“나는 오타쿠 입니다”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의 팝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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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타쿠 입니다” 무라카미 다카시 (Murakami Takashi)의 팝아트

타임지가 선정한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Murakami Takashi)에게 흔히 따라붙는 수식어는 ‘일본의 앤디워홀’이다. 젊은 세대의 작가들일수록 고독한 예술상보다는 보다 사회 참여적이거나 다른 사람들과 무엇인가 차별화되는 자극적인 수식어를 이름 앞에 달고 싶어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행보는 하나하나 주목받지 않을 수 없다. 한 기사를 응용해보자면 앤디 워홀도 울고 갈만큼 신기발랄한 마케팅 능력을 선보이는 다카시는 여러 작가들의 부럼운 질투를 사고있다고 한다.

간단히 그의 소개를 하자면 일본 출신의 팝 아티스트, 애니메이션과 만화, 게임과 같은 일본의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오타쿠 제1세대 작가이다.

2000년대 초반 뉴욕 미술계를 강타하며 아시아 최고의 스타작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생존작가 중 그의 작품 가격은 세계적으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고가이다.

미키마우스를 닮은 귀여운 캐릭터 ‘순백색 복장의 도브’의 경우 400만달러에 달했고 조각의 경우는 그 이상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2008년 소더비 뉴욕경매에서 무려 1516만달러(한화 약 170억원)에 낙찰된 ‘마이 론섬 카우보이’라는 남성 나체 조각작품이다. 자신의 성기를 움켜쥐고 정액을 하늘로 뿜어대는 이 조각작품은 당시 추정가 300-400만달러였지만, 열띤 경합 끝에 5배에 달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고한다.

고가로 낙찰되는 그의 작품들은 그를 스타덤에 올려주었다. 또한 상업적으로도 그의 역량은 대단했다. 2002년에는 글로벌 브랜드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를 통해 상업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이루었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젊은 타겟들에게 달라진 루이비통의 패턴, 모노그램 멀티컬러는 가벼움과 산뜻함, 젊은 예술가의 센스를 보여주었고 젊은 층과 루이비통이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되었다.

이로써 다카시는 디자인계의 아이콘, 또 엔터테이너로써 승승장구하며 업계에서도 확실히 통하는 블루칩 아티스트로 각인되어졌다.

앤디워홀이 팩토리를 만들어 작품을 제작했다면, 다카시는 직원 300명을 두고 일사분란하게 작업한다. 또한 차세대 아티스트를 발굴하여 육성하기 위해 ‘카이카이 키키 스튜디오’를 도쿄와 뉴욕에 열고 혼자만의 세계가 아닌, 일본 젊은 현대미술 파워를 결집해 글로벌 미술계를 집중 공략하겠다는 전략도 가지고있다.

대중들과의 소통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갤러리에 한정되어있지 않고 피규어, 영상, 만화, 게임을 통해 대중과 쉽게 만나려는 노력을 하고있는것이다.

2013년에는 일본 사람들의 국민메신저인 라인에서 스티커를 출시하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은 SNS에 흥미가 많습니다.
특히 모바일 메신저에서 이미지를 사용한 커뮤니케이션에 말이죠.
예를들어 내가 라인 스티커를 통해 나 지금 잔다고 말할 때
내가 어떤 캐릭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다카시는 작가인가 기업가인가?
실제로 다카시는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있는 팝아티스트이다.
미국에 치중되어있던 팝아트를 일본식으로 해석하고 대중화 시켰다는 호평과 동시에 상업적으만 유능한 예술 기업가가 아닌가?라는 평가도있기 때문이다.

또한 롤리타 성향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고있다. 다카시는 미소녀 등신상 ‘미스 코코’를 선보이는데 미스코코는 롤리타 콤플렉스(미성숙한 소녀에 대한 동경이나 성적 집착)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복을 입는다. 과연 인체 조각이냐, 섹스 인형이냐라는 논란이 일어난것이다.

 “나를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 문화의 표면만을 차용해 서구 예술과 결합해 세계적으로 거짓말만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런 비판에 의기소침하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고 내가 가진 미션에 대해 고민할 생각이다”

이 모든 논란과 이슈는 어쩌면 다카시의 치밀한 계산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많은 논란들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를 정확히 알리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베르사이유에서 그의 작품으로 전시가 열렸을때, 많은 사람들의 거센 항의를 받앗다. 프랑스의 찬란함과 역사를 보여주는 궁전에서 팝아트가 전시되는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항상 세상에서 히트칠 게 무엇인지 생각하며 산다”라는 그의 말처럼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